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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1

영화 문라이트(2016)를 보았다


2017년 1월에 작성한 글입니다.

영화 문라이트 포스터 - IMDB영화 문라이트 포스터 - IMDB

나는 무엇이든 항상 깐깐하게 고른다. 300원짜리 볼펜에도 좋아하는 브랜드가 따로 있다. 옷자락에 달린 태그 하나에 마음이 돌아서기도 한다. 별로 고민할 가치가 없는 결정이라해도 마찬가지다. 나의 손이 닿는 작은 범위 안에서는 항상 나만의 컬렉션을 만든다. 남들과는 다른 내가 되기 위해서 선택은 결국 스스로 해야한다.

내가 문라이트에 공감했던 부분도 선택의 중요성이다. 소년은 방황한다.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또래에게 놀림을 받고, 아들이기 때문에 엄마의 폭정에 순종해야 한다. 다수의 세계에서 퀴어는 그다지 흔한 성정체성이 아니다. 반항하는 아들도 있을 수 없는 얘기다. 고민하는 소년에게 어른은 말한다. 타고난 흑빛 피부 조차 "달빛 아래서"는 파란 색으로 보일 수 있다고 말이다.

남의 평가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 나의 행복, 내가 생각한 나만의 색이 훨씬 중요하다. 영화의 메인 포스터는 그래서 녹색, 자색, 남색 3가지 다른 색깔의 필터를 씌운 주인공의 얼굴이다. 영화가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의 세 가지 다른 관점으로 나누어진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슬럼가 출신 흑인 동성애자가 세상에 자신의 취향과 선택을 솔직하게 드러내기까지의 여정이다.

태어날 때부터 줄곧 이성애자 동양인인 내가 정확하게 헤아릴 수 없는 세계라는 것이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폭압적인 편견이 지배하는 상태가 외롭고 힘들다는 것은 동성애로 살아보지 않았어도 안다. 모두가 '아니'라고 했을때 외쳤던 '네'가 훨씬 가치있고 아름다운 것은 물론이다. 영화는 마트의 시식대 코너인마냥 한번씩 맛보라며 동성애의 스퀸십을 스크린에 억지로 드밀었던 기존의 퀴어영화들에 비하여 쉼표를 찍어가며 느릿느릿, 하지만 훨씬 조곤조곤하고 따박따박하게 말한다. 그래서 동성애자가 아니라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얌전한 순응보다는 거칠은 패배가 값어치 있는 거라고 말이다. 답은 정해져있지 않고 우리는 열심히 찾아야한다. 마트의 마감 야채 코너든, 다가올 한표를 선사할 우리의 투표용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