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영화 할복(1962)을 보았다


2013년 4월에 쓴 글입니다

영화 할복 스틸컷 - IMDB
영화 할복 스틸컷 - IMDB

젊은 무사의 칼집엔 죽도가 들어있다. 자기의 목숨을 버리러 왔는데도 말이다. 늙은 무사의 칼집엔 날 선 칼이 들어있다. 자기를 베려고 가져온 칼이 아닌데도 말이다. 할복은 섬세한 찬바라 영화다. 칼을 찬 무사들의 이야기 답지 않게 스토리텔링부터 복잡한 액자식 구성으로 되어있다. 일지의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젊은 무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시 늙은 무사의 이야기로 갔다가 일지로 돌아오며 끝맺음한다. 현란한 이야기 속에서도 허리 춤에 달린 칼로 마구 죽이거나 베지 않는다.

오히려 명예를 댓가로 포기하기에 목숨은 너무 소중하다고 주장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젊은 무사나 불의에 항거하는 늙은 무사 모두 억울한 죽음을 맞는다. 자결은 불필요한 허례허식이다. 오즈 야스지로처럼 패전의 기운이 만연한 일본에 희망을 주려는 명제인지, 구로사와 아키라처럼 벽안의 와패니즈를 겨냥한 명제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백번 옳은 말이다. 굳이 그걸 알기 위해서 트위터나 커뮤니티 허세글을 남기고 하룻 밤 이불을 뻥뻥 차 볼 필요도 없다. 내일은 분명 내일의 해가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