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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패왕별희(1993)를 보았다


    2016년 10월에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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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신기하게도 어딜가나 있었다. 돈을 벌려고 일을 할때면 거의 뭐라할 것 없이 반드시 보였다. 나이가 많고 눈가에 주름이 곱절인 사람들 말이다. 물어보면 대답도 한결같았다. "먹고 살아야지 뭐". 그리고 약 35도의 사선으로 바닥이나 하늘을 본다. 한결같은 생김새에 한결같은 레퍼토리. 뭐지, 이 사람들은 움파룸파인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초콜릿 공장이 어딘가에 실제로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로알드 달의 난쟁이들은 초콜릿을 먹고 살았지만 일터의 움파룸파는 "먹고 살아야지 뭐"라는 허깨비를 먹고 산다. 아니면 "꿈을 갖는 것도 좋은데 그것도 때가 있지 내 나이쯤 돼 봐라..."라는 주문이다. 덕분에 아파도 출근하고 약속이 있어도 근무가 우선이다. 진통제보다도 강한 이 마법을 나는 생활이라고 부른다. 산다는 게 곧 마법이다.

    감독 장예모는 마법사다. 말하자면 생활의 달인이다. 아니 그 TV프로 말고. 중국의 근현대를 목이 날아갈 수 있는 사회주의 정부 입김 아래서도 꿋꿋이 그려냈기 때문이다. 이 역사의 토막에선 청조의 멸망과 사회주의의 시작, 시장경제의 도입의 충격이 거의 한 세대만에 일어났다. 사람들은 모든것을 잃었다가도 다시 가졌고 가졌다가도 별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기도 하고 그랬다. 덕분에 "먹고 살아야지 뭐"라는 말들을 수도 없이 되뇌였을 거다. 어제의 양반은 내일의 공산주의 주적이고 내일 모레면 또 돈도 없는 거지새끼거나 돈만 많은 개새끼가 되었다. 먼저 가버린 사람들 보다 정말 꿋꿋이 산 사람들에게 오히려 삶은 더욱 공허하고 씁쓸한 것이었다. 마이크 타이슨의 핵펀치를 배와 턱에 한대씩 맞고 그리고도 어깨랑 명치를 맞고도 링에서 버티는 아마추어 선수를 상상해 보라. 장예모의 화폭에서 중국의 인민은 비정한 역사의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낸 거인이다. 연출도 플래시백이나 특수효과가 거의 없어서 마치 다큐멘터리 같다.

    패왕별희에서도 생활은 마법이다. 패왕과 그 희첩을 연기하는 두 배우는 함께 어린시절을 보낸 죽마고우이자, 알아주는 앙상블의 듀오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둘의 공연은 보기 힘들다. 시대는 계속 모습을 바꿔가면서 이들의 화합을 방해한다. 족벌의 지배, 일본의 점령, 사회주의의 인민재판... 청조의 지도자는 희첩 배우를 희롱하고, 사회주의는 상호 인민재판을 요구한다. 주인공들의 경극에서 패왕과 희첩은 함께 있어야만 극이 완성되지만 제대로 된 합(合)은 요원하기만 하다. 왜인고 하면 주인공들은 지도와 연출에 따르는 일개 연기자다. 단지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게 여차저차 시대를 버텨나간거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온연한 합에 이르지 못하는 비극이 패왕별희 속에만 있는 건 아니다. 내가 아는 어떤 늙은 형은 사실 음악과 평생을 함께 하고 싶었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계속 춤이 추고 싶다고 했고 뭐 형이상학적인 예술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사람도 있고 그랬다. 생활이라는 마법이 그 위대한 사람들을 못생기고 추한 움파룸파족으로 바꿔버렸다. 이번에 대한민국 정부에 일어나고 있는 정교유착 폭로는 그래서 더 씁쓰름하다. 자신의 영달만을 고려한 어떤 지도자의 각본 안에서 우리는 무기력하게 소모되었다. 나같은 베짱이야 뭐, 그래도 싸지만 일하는 기계부품이 되어버린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말 아쉬운 일이다. 얼마나 아파야 청춘이고 봄인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