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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버드맨(2014)을 보았다


2015년 2월에 쓴 글입니다

영화 버드맨 스틸컷 - britannica
영화 버드맨 스틸컷 - britannica

그래도 인기 배우다. 앞니가 튀어나오고 머리가 벗겨졌어도 괜찮다. 여전히 페이스북 '좋아요'는 높을 것이고 파파라치는 찍어대기 바쁘니까 말이다.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허우대 멀쩡한 배우 존 쿠색이 자신의 몸을 버리고 늙다구리 연기파 배우가 된 이유다. 사람들은 지독할 정도로 인기를 원한다.

버드맨의 마이클 키튼도 그래서 맘이 편치 않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브로드웨이는 배우들의 무덤이다. 관객들은 격렬한 자극에만 반응한다. 엉덩이에 실리콘을 넣고 기이한 옷을 입은 그래미 새 후보나, 블록버스터 주인공의 섹시한 근육이 중요할 뿐이다. 한 때 그러한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이었던 사실은 의미가 없다. 얼마나 열정을 쏟았는가도 무관하다. 게다가 매니저는 돈을 타령하고 비평가들은 비관적이다. 노배우의 첫 브로드웨이 주연작은 좋아요를 전혀 받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다.

마냥 씁쓸하기만한 설정에 멕시코출신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서 그나마 생기가 돈다. 남미 특유의 마술적 리얼리즘 덕분이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류의 소설에서 볼 수 있었던 초자연적 묘사에 스페인어권 감독들의 발랄한 연출기법을 더했다. 결과물엔 더러운 진실과 어이없는 상상이 혼재한다. 초능력을 쓴다던가 무대 위에서 성교를 시도한다던가. 약하고 온듯한 묘사에 픽하고 실소를 짓다가도 마이클 키튼의 허옇게 센 터럭을 볼 때 숨이 멎는다. 내가 알던 옛날 "브루스 웨인"은 어디에 있는건지. 주말의 명화를 보고 장래희망란에 당당히 대통령을 쓰던 나는 어디에 있는건지. 같은 관종이라곤 하지만 마이클 키튼조차도 아닌 내가 동정은 해도 되는건지.